드라마 초간단리뷰

응답하라 1994 / 극본: 이우정외 4명 연출: 신원호

Aminas 2014. 1. 28. 19:17

2013 - 13 

 

21부작 / 응답하라 1994

 

 

 

아날로그의 힘, 청춘이라는 공감

 

복고 서울특별시 상경기 캠퍼스 첫사랑 따뜻함 가족 청춘 사투리 농구대잔치

 

이것들은 1부에서 선공개됐던 응사를 설명하는 키워드 열 개.

이젠 요 단어들을 보기만 해도 가슴이 뛴다.

그것들과 함께 울고 웃을 수 있었던 나는 진정 행복한 시청자...

 

내게 있어 90년대가 소중한 건 그 중심에 먼저 나의 과거가 있어서이다. 물론 그 시대가 표면적으로 혹 수치상으로 문화부흥기이며 르네상스라는 것도 크게 한몫할 테지만.ㅎ 사실 누구에게나 그렇지 않을까. 보통의 사람들에게 젊음 혹 청춘이란, 소중하고 애틋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것이 과거에 대한 향수든, 현재 느끼는 치열함이든, 미래를 향한 동경이든, 가슴을 꿀렁이게 만드는 것이 분명 있는 것 같으니 말이다. 유명한 누군가가 그랬다. 특히 어린 시절에 좋아하는 것들에겐 맹목적 애정이 포함된다고. 그래서 그 시절엔 가치의 고저나 우열을 가늠할 수 없게 만드는 한결같은 해바라기가 존재한다고... 그래서 먼저, 응사를 향한 내 애정이 이토록 맹목적이며 애틋할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는 바,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을 내 사랑 응사의 마지막 이야기들을 찬찬히 시작해볼까나...^^

 

사실 시작 전만 해도 굳이 따지면 나는 응칠 세대라서 응사에 이토록 몰입할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 뭐 전편보다 나은 속편이 없다는 속설도 있을 뿐더러 캐스팅에 있어서도 사실 기대감이 많이 높진 않았으므로...;;; 그런데 결과적으로 현재, 응사가 진즉 끝났음에도 여직 나는 응사의 강에 허우적대고 있다. 보다시피 아직 응사를 심하게 앓고 있는 중이다...ㅠ 왜 나는 이들을 이렇게도 떠나보내지 못하는 걸까...

 

난 지금 디지털 혁명(좀 거창한거인가ㅋ)의 시대에 살고 있다. 너무 편리하게도 방 안에서 저 멀리의 것들을 보고 들을 수 있고, 이렇게 글을 끄적일 수 있는 것도 그 절대적인 풍요의 혜택 덕분이다. 그런데 이렇게 편리한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늘 그리움이 있다. 참 편리한데 다 좋지만은 않은 모순을 느끼며 산다고 하면 맞을까. 물론 이 그리움은 지나간 옛것에 대한 단순 향수도 포함될 것이다. 응사가 먼저는 그 지나간 옛것들을 고스란히 소환해주어 반가웠다 이야기하고 싶다. 지금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것들을 내 눈 앞에 그것도 이토록 디테일하게 재생산하여 보여주다니... 그것들이 지금은 전혀 쓸모없는 것들이고 과거의 문화 이기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라 하더라도, 그것들이 또 현재의 문명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었을 테니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지금은 사라진 물건들, 장소들을 보면서 과거의 내가 오버랩되는 건 이젠 나이가 제법(?) 들어버린 나의 너무도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응사가 소환한 것이 단순히 그 시대의 물건, 그 시대의 사람들만은 아니어서 내게 더 소중했다. 그 시절이 지니고 있던 아날로그한 정서까지도 고스란히 모셔온 듯하여 더 애틋했다. 아날로그 정서를 뭐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들다. 그런 것이 딱히 정해져 있지도 않고...; 하지만 적어도 지금보다 더디고 불편했던, 그래서 순수했던 그 무언가였을 텐데 그 정서가 응사에 잘 녹아있는 느낌이었다. 이건 조금 다른 얘긴데, 지금에 와서 옛 드라마나 영화 속 사랑을 보다보면 다소 오글거린다. 그때 당시에는 응당 재미있게 봤을 법한 이야기인데, 시간이 흐른 지금에선 그것을 정서적으로 용납하기가 민망할 때가 있다. 부인하고 싶지만 우린 그렇게 보편적이라는 생각들도 적잖게 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응사가 때때로 필요 이상으로 디테일하게 보여주는 장면들에, 그리고 생각보다 느리게 전개되는 듯한 감정선에, 적잖은 이들이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는 건데, 이것이 어쩌면 그 아날로그 정서를 우리 안에서 많이 지워내서는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난 되려 그 아날로그 정서란 것을 대범하게 보여준, 끝까지 복고스럽게 이야기를 끌고가준 제작진의 뚝심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청춘이 가장 빛나는 시기인 20대, 그리고 첫사랑. 이들을 이토록 애틋하고 아름답게 그래서 보다 특별하게 그려준 응사에게 또한 감사를... 배우가 뒤늦게 코멘터리를 해주는 게 참 중요하구나를 새삼 느꼈는데 정우가 그러더라. 우리 모두가 감동한 그 프로포즈씬이 자신은 참 슬펐다고. 그래, 그 감정은 우리도 느낀 거니까 그냥 그렇구나 했는데 그 다음말이 가슴을 쿵 내려앉게 만드는 거다. 슬펐던 이유 중 하나가 그동안 쓰레기가 나정이 곁을 그렇게 오랫동안 맘끓이며 맴돌다가 드디어 고백해서라고... 연기한 본인이 맴돌았다고 표현하다니 와, 우린 나정이를 뒤에서 묵묵히 지켜준 거라 일차원적으로 생각했었는데 이 배우는 한단계 더 나아가 그렇게 생각하고 연기한 거다. 그래서인지 마지막회 쓰레기가 나정이한테 비로소 와달라고 문자를 보낸 게 보통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니었겠다 싶으니 가슴이 더 찡해오더라. 그래서인지 둘의 사랑이 비로소 균형을 맞추고 서로의 일상을 평범하게 나누는 모습에 왜 그리 가슴이 벅차오르는지... 분명한 판타지인데 그 안에 현실을 이야기해주는 그네들이 나를 또 감동시켰다. 그동안 그들의 사랑의 서사에 이토록 열광했던 건 그 사랑의 과정이 특별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시절이 무척 예쁘고 풋풋해서이기도 하다. 그만큼 젊음이란 청춘이란 진정 큰 무기이자 선물이니까. 그 아름다움을 되새겨준, 그 설렘을 선물해준 그대들에게 많이 고마울 뿐이다. 극은 떠나갔지만 우리 없는 어딘가에서 지금처럼 행복하기를... 행쇼.

 

사실 응칠도 응사도 시트콤 성격이 강하다. 그런데 이것은 인터뷰에서도 밝히신 부분이지만 이런 타이틀을 굳이 내세우지 않았다. 백번 맞는 선택이다. 웃음은 그야말로 옵션인 거고 결국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보다 더 중요했기에 이 선택은 천번만번 옳았다. 그래서인지 이야기 사이사이에 웃음들은 더 짜릿했고, 그 웃음을 타고 흐르는 진중한 이야기는 곳곳에서 더 빛이 났던 것 같다. 사실 주제가 있는 이야기를 매회 만든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난 이런 면에서 이우정작가님의 스토리텔링을 격하게 아낀다.ㅠ 맘껏 펼쳐진 이야기들을 하나의 주제로 모으는 힘도 그렇고, 그것들을 나레이션으로 얽고 기대치 않은 지점에서 선사하는 짜릿한 임팩트들은 깊이 빠져 본 청자들에게는 참 짜릿하리만큼 고마운 부분이다. 여기에는 이작가님이 시종일관 따뜻하게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시선도 크게 한몫했다.ㅎ 사실 집단창작이라는 게 말이 쉽지 보통 복잡한 작업이 아니다. 그런데 이것들을 진두지휘하며 이야기를 엮어갔다는 것, 그것이 이렇게 대성공을 거두었다든 것, 이것은 신감독님도 그렇고 이작가님도 그렇고 한국 드라마 창작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주셨다고 아니할 수 없는 부분이다. 늘 그 나물에 그 밥이라 비판하는 일이 많은데, 그래서 개인적으로도 진부하고 상투적이고 이런 걸 좋아하지 않는 성향이라 더 그러기도 한데, 이렇게 허를 찌르고 새로운 방식으로 이야기를 엮어가는 드라마도 앞으로 계속 등장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낚시여도 좋고 그 어떤 방법이라도 상관없으니 말이다. 원래 대중은 새로운 것에 물음표를 가지고 반감을 갖기도 하는 법이다. 뭐 지나친 설레발 하나 더 지르자면ㅋ, 시간이 좀더 흐르면 이를 더 높이 평가해줄 것만 같으니까. 물론 이에 대해 반감을 가진 대중들도 있지만 방식이야 어떻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하고, 그 방식으로 더 많은 대중이 접할 수만 있다면, 그 과정이 참신할수록 난 왠지 더 짜릿할 것만 같다. 나 쫌 긍정적인 대중이므로.ㅋ   

 

지금도 삶, 사람, 사랑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드라마나 영화는 얼마든지 많다. 그들 덕택에 놓쳐서는 안될 가치들을 여전히 되새기고 그렇게 붙잡으며 더불어 살아간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건, 그때보다 우린 분명히 더 개인적이 되었고 더 이해타산적이 되었다는 거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지만 덜 친절해졌고 덜 참는다는 거다. 요즘 시대에 누가 이렇게 하숙을 하느냐는 동일아부지가 말씀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게 슬펐다. 그렇게 의도치 않게 변해버린 우리들에게 한 템포 쉬면서 주변을 좀 돌아보라고 이야기해준 응사라서 소중했다. 먼저 그리고 빨리 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며 결국은 내 사람들과 얼만큼의 사랑을 나누느냐가 더 중요한 거라 속삭여준 응사라서 더 소중했다. 그대들과 그래서 작별하기가 더 싫은갑서...ㅠ

 

신촌하숙이 문을 닫았다. 그네들이 마지막 식탁에 빙 둘러앉았는데 그네들이 울기도 전부터 내가 먼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건 아마도 순수했던, 그래서 다신 돌아갈 수 없을 청춘의 종말을 아쉬워하는 눈물이었던 것 같다. 어른들이 보시면 분명 웃긴다고 하실 부분이다. 새파랗게 젊은 것들이 무슨 그리 섭섭하고 아쉬운 게 많느냐고... 그런데, 잘개 쪼개진 청춘의 고지 고지들을 넘어가는 것도 그리 쉽지만은 않은 것 같아서 말이다. 뭐 이건 나만 그런건가... 나 하나의 몸만 건사하면 그만이었던 그 시절과 작별을 하고, 이젠 책임져야 할 것, 포기해야 할 것들이 차츰 늘어가는 현실 속에 놓여진 그네들의 모습 속에 내가 겹쳐보이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이건 그때보다 더 행복하고 덜 행복하다의 개념이라기보다는 이미 사라지고 지나간 것들에 대한 애도이자 동경이라고 해야 할까. 에고, 이 복잡한 감정이 다 표현이 안 되는 비루한 글빨이 안타까울 뿐이다.ㅠ;;; 그럼에도 그 시기를 건강하게 잘 지내왔다고 잘 버텨왔다고 칭찬해주는 마지막 삼천포 나레이션이 고마웠다. 그러면서 앞으로 잘 살아내보자고 격려하고 위로해주는 말에 힘을 얻었다. 나 너무 이입 잘 되는 청자라서 그냥 곧이곧대로 느낀 걸 부인할 수 없는데ㅋ 그래서인지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도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 자리에서 난 2014년의 청춘은 또 어떻게 보내야 할까를 한참을 고민하는 나를 발견...

 

 

 

 

 

마지막회, 삼천포 나레이션 中에서...

 

2002년 6월 19일, 신촌하숙이 문을 닫았다.

그렇게 우리는 신촌하숙의 처음이자 마지막 하숙생이 되었다.

 

특별할 것도 없는 내 스무살에

천만이 넘는 서울특별시에서

기적같이 만난 특별한 인연들...

 

촌놈들의 청춘을 북적대고 시끄럽게 그리하여 기어코 특별하게 만들어준 그곳,

우린 신촌하숙에서 아주 특별한 시간들을 함께 했다.

 

울고 웃고 만나고 헤어지고 가슴아프고

저마다 조금씩 다른 추억과 다른 만남과 다른 사랑을 했지만

우린 같은 시간 속 같은 공간을 기적처럼 함께 했다.

 

지금은 비록 세상에 눈치를 보는 가련한 월급쟁이지만

이래봐도 우린 대한민국 최초의 신인류  X세대였고,

폭풍 잔소리를 쏟아내는 평범한 아줌마가 되었지만

한땐 오빠들에 목숨 걸었던 피끓는 청춘이었으며,

인류 역사상 아날로그와 디지털 그 모두를 경험한 축복받은 세대였다.

 

70년대 음악에 80년대 영화에 촌스럽다는 비웃음을 던졌던 나를 반성한다.

그 음악들이 그 영화들이 그저 음악과 영화가 아니었고

당신들의 청춘이었고 시절이었음을 이제 더 이상 어리지 않은 나이가 되어서야 깨닫는다.

 

2013년 12월 28일, 이제 나흘 뒤 우린 마흔이 된다.

대한민국 모든 마흔살 청춘들에게 그리고

90년대를 지나 쉽지 않은 시절을 버텨 오늘까지 잘 살아남은 우리 모두에게

이 말을 바친다.

 

우리 참 멋진 시절을 살아냈음을

빛나는 청춘에 반짝였음을

미련한 사랑에 뜨거웠음을

기억하느냐고...

 

그렇게 우리 왕년에 잘 나갔었노라고

그러니 어쩜 힘겨울지도 모를 또다른 시절을 촌스럽도록 뜨겁게 살아내보자고 말이다.

 

뜨겁고 순수했던,

그래서 시리도록 그리운 그 시절,

들리는가 들린다면 응답하라 나의 90년대여...